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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백수/어른동화이야기

메리 포핀스,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주인공 메리 포핀스의 매력

  




어제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가 개봉됐다.
제작 당시부터 큰 화제와 기대를 불러모았는데도 미국 현지에서는 이미 폭망했다고 하더라마는, 에밀리 블런트 팬인 나는 어쨌든 개봉 중에 보려고 벼르고 있다.

서구에서는 63년에 나온 줄리 앤드루스 주연의 원작 영화 <메리 포핀스>의 인기가 워낙 컸기 때문에 리메이크작에 대한 기대도 뜨거웠다.
그러나 영화보다는 원작 소설 <메리 포핀스>의 왕팬인 나로서는 63년 영화는 원작 소설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지라(원작과 떼어놓고 보면 영화 자체의 매력은 인정함.) 솔직히 리메이크작 폭망도 약간 쌤통(...)이긴 하다. 

그래서 이번엔 원작 소설 <메리 포핀스>에 관한 포스팅을 써보려고 한다. 쓸 이야기가 워낙 많긴 한데, 우선은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부터 소개한다. 

    

메리 포핀스는 다정함과 거리가 먼 사람

영화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 등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소설 원작의 작가인 P.L.트래버스는 디즈니가 만든 영화 <메리 포핀스>가 원작을 크게 훼손했다고 생각했다.

트래버스가 분노했던 이유이자 원작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로 꼽히는 건 역시 메리 포핀스라는 주인공의 성격 묘사이다. 
영화의 영향으로 '메리 포핀스'하면 다정하고 인자하고 따뜻한 성격의 유모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원작의 메리 포핀스는 그보다 훨씬 더 입체적인 인물이다. 



메리 포핀스는 늘 콧방귀를 뀐다.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인 제인과 마이클이 (본인 생각에) 쓸데 없거나 (본인 기준에) 무례한 질문을 던질 때면 "흥"하는 콧방귀만 뀌며 대답을 안 하고 무시하기 일쑤다. 

그렇지만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한 친구에게는 더없이 상냥한 사람이기도 하다.
주의깊게 읽으면 아이들에게도 사실은 상냥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늘 드러내진 않으려고 할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메리 포핀스의 친구들 

메리 포핀스의 소중한 친구들은 대개 언뜻 봐서는 초라하고, 특별한 가치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버트는 성냥을 판 돈이나 보도블럭에 그림을 그려 보인 뒤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져 주는 동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메리 포핀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친구이자 애인(?)이다. 

사실 버트에게도 메리 포핀스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두 사람은 하늘이 흐리고 동전도 넉넉지 않은 어느 날 버트가 그린 그림 속 공원으로 뛰어들어 둘만의 행복한 티타임을 갖기도 한다. 

버트 외에도 누구도 찾지 않는 허름한 과자점의 코리 할머니,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져 뿔에 꽂힌 별 때문에 춤을 멈출 수 없는 빨간 소, 쌍둥이인 바바라와 존의 친한 친구인 찌르레기, 옆집 라크 아주머니에게 지나친 사랑을 받아 인생이 피곤한 강아지 앤드루 등이 메리 포핀스와 각별한 인연을 나누는 인물들이다. 
마치 메리 포핀스 자신처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초라하거나 때론 기이할지라도, 그들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힘으로 매력을 무한 발산하는 친구들이다.


메리 포핀스는 거울 보기를 앵무새처럼 좋아한다

메리 포핀스의 성격은 처음 보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쌀쌀맞으면서도 알고 보면 무척 귀여운 구석이 많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충만하다 못해 넘쳐 흐르는 사랑이 그러하다. 


메리 포핀스가 좋아하는 패션템은 여러가지가 등장하지만 그 중에선 아무래도 메리 포핀스의 장거리 이동수단이기도 한 앵무새 머리를 한 우산을 빼놓을 수가 없다.

메리 포핀스는 마녀일지도 모른다


메리 포핀스가 특별한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인 건 분명하지만 그 힘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는다.
(춤추는 빨간 소와 메리 포핀스의 어머니가 친한 친구였다거나, 웃음 가스로 고통받는 위그 삼촌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아마 유전인 것 같기도.)
아무튼 분명한 건 메리 포핀스가 남들에게는 없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건 기본이고,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짐가방에서 침대를 포함한 이삿짐 전부를 꺼내기도 하며, 여차하면 하늘을 날 수도 있고, 남을 날게 할 수도 있으며,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그런 힘을 가진 메리 포핀스가 왜 뱅크스 씨네 집에 들어가 남의 아이를 돌보는 지 의아하다가도 그게 바로 메리 포핀스가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증거이리라 싶다. 
코리 할머니네 생강빵 저는 네 개에 3펜스 말고 100파운드에 살 수도 있는데요ㅠㅠ

메리 포핀스는 돈을 가진 사람, 권력을 과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콧방귀를 흥흥 뀌지만 허름하고 초라해 보이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멋진 힘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겉모습에 있지 않다는 것, 가만히 관찰하면 누구의 마음에든 요정의 마법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고 해서 아름답고 정교하며 귀한 것의 가치를 멀리하지도 않는, 세속적이고 친근한 매력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메리 포핀스는 아이들과 친구들이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어른이다. 




이렇게 적다 보니 어린 시절 계몽사 소년문고 판 <메리 포핀스>를 수십 수백번 읽으면서, 깨닫지 못한 사이에 메리 포핀스는 나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었나 싶다. 비록 그렇게 살고 있진 못하지만.

다음 번엔 메리 포핀스 원작자인 P.L.트래버스의 삶, 그리고 초판본 일러스트 작가인 메리 셰퍼드에 관한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