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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백수/헐리우드이야기

추억 속 미드 베벌리힐스 아이들의 '딜런' 루크 페리 사망

  


 남자의 이마 위 굵은 주름을 좋아하게 만든 베벌리힐스의 '딜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일이다. 어느날 친구 하나가 "너 <베벌리힐스 아이들> 알아?"라고 물어 왔다.
'비벌리힐스'라는 생소하고 신기한 어감의 단어가 귀에 잘 안 들어 와서 '비비힐스? 비버힐스?'하고 여러 번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오른쪽이 딜런 역 루크 페리. 왼쪽은 브랜든 역 제이슨 프리즐리.


친구의 말에 따르면 <베벌리힐스 아이들>은 '비벌리힐스'에 이사 간 브랜다, 브랜든이라는 쌍둥이가 나오는 드라마인데, 자기는 브랜든보다도 딜런이라는 남자애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발머리 켈리라는 여자애도 나오는데 걔도 예쁘고 브랜다도 예뻐서 누가 더 예쁜지 결정하기 힘들다고도 했다. 

친구의 요란하고 진지한 고민 때문에 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낀 나는 일요일까지 긴장한 채로 기다렸다.

과연 친구의 말대로였다. 갈색머리 브랜다도 예쁘지만 금발의 통통 튀는 켈리도 무척 예뻤다. 나 역시 둘 중 누가 더 예쁜지 고르기가 무척 어려웠다.


딜런 - 브랜다(섀넌 도허티) - 켈리(제니 가스). 딜런이 어찌나 저울질을 해댔는지 시청자들도 그 저울질에 동참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삼각관계. 정말 좋지 않은 드라마다.


그렇지만 딜런은... 딜런이 그 드라마 속 어느 누구보다도 멋있는 사람이라는 건 부인할 수가 없었다. 
딜런은 분명 착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드라마 속 내용을 절반 정도도 이해하지 못했지만(당시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극 중 쟤네가 고등학생들이라고는 하는데 하는 행동들은 도무지 고등학생같지 않았다.) 딜런이 이마에 잔뜩 주름을 잡고 우수에 찬 눈빛을 쏠 때 내 심장이 쿵쾅하고 빠르게 뛰던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딜런' 역의 배우 루크 페리의 사망

바로 그 '딜런' 역을 열연한 배우 루크 페리Luke Perry가 미국 현지 시각으로 어제(2019.3.4.) 사망했다고 한다.
루크 페리는 1966년생으로 미국 나이로 52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며, 사인은 뇌졸중이다. 

(루크 페리의 활동을 데뷔 시절부터 담은 버라이어티 지의 짧은 영상)

루크 페리는 미국 오하이오 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고 고등학교 졸업 후 배우가 되기 위해 LA로 이주했다. 
이후 다양한 직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며 배우로서의 꿈을 좇았다. 첫번째 배역을 얻기까지 256개의 오디션을 봤다고.
1988년 <러빙Loving>이라는 소프 오페라(한국의 아침 일일극같은 주간 연속극)를 통해 데뷔에 성공했다.

그러나 루크 페리를 스타로 만든 것은 역시 <비벌리힐스 90210 Beverly Hills 90210>(한국 방영 제목 <베벌리힐스 아이들>)의 '딜런' 역이다. 


<비벌리힐스 90210>은 LA의 부촌 '비벌리힐스'에 브랜다, 브랜든 쌍둥이 남매가 이사를 가면서 겪게 되는 일을 그린 드라마로, 루크 페리는 우수에 찬 나쁜 남자 역할 딜런 역을 통해 단숨에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가벼운 십대 막장 드라마보다 진지한 연기를 하고 싶다며 시즌 6에서 잠시 드라마를 떠나기도 했으나, 드라마 종영을 앞둔 시즌 9에서 돌아와 시즌 10까지 딜런의 이야기를 마무리해싿. 

<비벌리힐스 90210>이 종영된 2000년 이후에는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 드라마 <오즈> 등에 출연하면서 작은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2017년 이후에는 CW의 히트작인 10대 드라마 <리버데일Riverdale>에서 아치 앤드루스의 아버지 프레드 앤드루스 역을 맡아 출연 중이었다.(<리버데일>은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이다.) 

리버데일이 재밌다고 나더러 이거 보라는 10대 친구가 있는데... 딜런이 나온다고 말해주지 그랬어.


 현실 딜런은 착한 남자 

루크 페리는 <비벌리힐스 90210>으로 한창 인기를 끌던 중, 배우 출신이지만 당시엔 연예계를 떠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여성 '미니 샤프Minnie Sharp'와 만나 결혼했다. 

1993년 루크 페리와 전 부인 미니 샤프의 결혼식에서.


이 커플은 여느 헐리우드 스타들과 달리 작은 결혼식을 올린 뒤 10년간 두 자녀를 낳으며 조용한 삶을 살았다. 2003년 이혼을 했지만 이 역시 큰 잡음 없이 이루어졌다. 
기사에 따르면 루크 페리는 두 자녀들과 전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했다고 하니, 아마 이혼 뒤에도 무난한 관계를 만들며 잘 살아왔나보다. 

어제 사망 소식이 발표되면서야 루크 페리가 약혼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단다. 약혼녀는 배우 출신이지만 현재는 심리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웬디 바우어라는 여성이라고 한다. 현실 속 딜런은 적어도 극 중 딜런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었나? 


<리버데일> 제작진의 애도, <베벌리힐스 아이들> 리부트

루크 페리의 사망 소식에 이 배우와 일했던 많은 동료들이 SNS 등을 통해 애도를 표하고 있다. 루크 페리가 사망 전까지 출연 중이었던 <리버데일>은 현재 시즌 3를 촬영 중인데, 하루 동안 촬영을 중단하고 추모의 시간을 갖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마 주름이 좀 더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치명적인 <리버데일>에서의 모습.



한편 2018년 12월에는 <비벌리힐스 90210>의 리부트 계획이 발표되었다.
오리지널 드라마의 출연 배우들이 모이되, 그들이 맡았던 배역이 아닌 배우들의 삶을 반영한 가짜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드라메디(드라마+코메디)를 계획하고 있다고. 
이 리부트에 브랜든(제이슨 프리슬리), 켈리(제니 가스), 스티브(이안 지어링), 도나(토리 스펠링), 데이비드(브라이언 오스틴 그린) 등이 출연하겠다고 밝혔으나 루크 페리와 브랜다 역의 섀넌 도허티는 불참하겠다고 해서 아쉬움을 자아냈었다. 

이 둘이 쏙 빠진다면 앙꼬 없는 찐빵, 고무줄 없는 팬티.

낯선 배우들도 많고 도나가 센터인 걸로 봐서는 시즌 후반부의 사진인 듯.



제작진들은 배우들의 최종 고사 이후에도 여전히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발표해서 아쉬움에 질척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결국 루크 페리의 사망으로 적어도 딜런의 모습을 다시 보기는 어려워졌다. 



  • <비벌리힐스 90210>은 시즌 3까지 <베벌리힐스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방영되었었다.

  • 원제인 <비벌리힐스 90210>에서 숫자 90210은 비벌리힐스 지역의 우편번호라고 한다. 

  • 당시 국내 정서에 안 맞아서 전 시즌이 방영되지 않았다고 국내 위키 등의 문서에 적혀 있는데, 사실 현지 방영 당시에도 인기만큼이나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10대들의 성관계가 자꾸 극의 중심 소재로 다뤄져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함.
    (나도 어린 시절에 본 <베벌리힐스 아이들> 마지막 장면의 내용이 무척 혼란스러웠다. 브랜다와 사귀던 딜런이 갑자기 켈리랑 바닷가에서 모포 덮고 하룻밤을 자더니, 그 다음부터 딜런과 켈리가 브랜다를 배신하는 치명적 잘못을 한 것처럼 흘러가서 어리둥절했던 기억.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애인이 있을 땐 다른 친구랑 같이 잠을 자면 큰일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장면이었다.......)

  • 극중에서 브랜다와 사귀는 것을 반대하는 딜런의 부자 아빠 때문에 딜런이 브랜다와 함께 멕시코로 도망가는 장면도 있었다고 한다. 10대의 가출, 해외 동반 도피, 동거, 게다가 이 여행 이후로 둘의 사이는 결정적으로 파경을 향해 달려갔단다. 

  • 집으로 돌아온 딜런은 켈리랑 바람을 피우고, 이러쿵저러쿵 온갖 막장 전개 끝에 결국 다른 여자랑 결혼(??!!)하면서 극을 떠났다고 한다. 시즌 10 마지막 장면은 도나랑 스티브의 결혼식에서 딜런과 켈리가 키스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함. 


비록 대단한 팬은 아니었지만 내 어린 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 한 장면을 장식하는 배우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니 조금 씁쓸하다. 가끔 딜런처럼 이마에 주름 잔뜩 잡힌 갈색 머리 배우를 보면 루크 페리인지 아닌지 찾아보기도 했었는데. 

건강 관리하고 잘 살자! 백세 시대 천수를 누리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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