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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백수/해외드라마

원데이 앳 어 타임, 배우 리타 모레노Rita Moreno의 삶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트콤 <원 데이 앳 어 타임one day at a time>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등장인물은 주인공인 싱글맘 페넬로페도 성장해 가는 두 아이들도 아닌 할머니 역할의 '리디아', 바로 배우 리타 모레노다.

아름답고 우아한 외모,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미'를 잃지 않으려 하는 옛날 사람이지만 여성으로서 딸과 손녀가 받는 차별에 깊이 공감하는 모습,
자식들에 대한 끔찍한 사랑, 아픔, 고난, 이별을 겪었던 자신의 지난날을 소중히 기억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꿋꿋이 지켜 온 쿠바인으로서의 긍지 등 작품 속 리디아를 생각하면 수많은 매력포인트들이 떠오른다.

리디아라는 캐릭터의 성격과 행동은 라틴 아메리카계 가정을 그린 대중매체에 흔히 나타나는 스테레오 타입의 어머니/할머니지만 배우 리타 모레노는 리디아를 결코 흔하지 않은 인물로 그려내며 80대의 나이에도 열연하고 있다. 

리타 모레노에 대해는 <원 데이 앳 어 타임>을 한참 볼 때까지도 어떤 인물인지 전혀 알지 못했는데, 알아보다 보니 이 시트콤 내에서는 물론이고 헐리웃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업적을 남긴 그야말로 대배우 중 한 명이었다. 

히스패닉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오스카를 수상한 여자 배우, EGOT을 수상한 배우들 중 한 명, 잊히지 않을 명작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왕과 나>에 출연한 배우. 무엇보다도 유색 인종 여성 배우로 자신이 겪었던 차별과 폭력에 대해 발언하며 수많은 후배들과 대중들에게 롤모델로 자리한 배우 리타 모레노의 삶을 짤막히 소개해보겠다. 


관련 글 : 추천 : <원데이 앳 어 타임>(넷플릭스) 다양성을 고민하는 가족 이야기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최초의 히스패닉 여성

리타 모레노는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에 '아니타' 역으로 출연하여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는데, 히스패닉계 여성 배우로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아카데미 협회의 유색 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은 2010년대인 지금까지도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리타 모레노의 오스카 수상은 여타 배우들의 수상보다도 더 큰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오스카상 수상 당시의 리타 모레노. 내가 다 뭉클쓰.. 

이때 수상 소감을 10초 남짓밖에 발표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는데 나중에 인터뷰에서 '내가 상을 타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감을 준비하지 못했다. 당연히 주디 갈란드가 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딴 얘기 :
주디 갈란드는 '오즈의 마법사'로 1940년 오스카 아역상을 수상한 바 있지만 성인이자 정극 배우로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받길 간절히 원했었다. 그러나 대중과 평단 모두로부터 훌륭하다는 찬사를 받았던 작품들로 두 번 후보에 올랐음(1954년 '스타 탄생', 1962년 '뉘른베르크 재판')에도 한번도 오스카를 타지 못했다.) 

2018년 오스카상에 참석하면서 60여년 전 자신이 입었던 드레스를 그대로 입고 와서 화제를 모았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ㅠ



EGOT 리스트 중 한 사람이기도 한 리타 모레노 

EGOT은 헐리웃에서 퍼포머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광 중 하나로, 드라마/음악/영화/연극 각 분야에서 최고의 영예로 인정받는 상을 모두 한 번 이상 수상하는 것을 말한다. (드라마 부문의 에미Emmy, 음악 부문의 그래미Grammy, 영화 부문의 오스카(아카데미)Oscar, 연극 부문의 토니Tony의 각 앞자리를 따서 EGOT)

2019년 현재까지 역사상 EGOT을 달성한 사람은 15명이고 그 중 세번째로 EGOT을 달성한 것이 리타 모레노다. (여성으로서는 두번째.) 

리타 모레노는 앞서 말한 196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을 시작으로, 1972년 그래미 최우수 어린이 앨범상(<일렉트릭 컴퍼니>), 1975년 토니상(<더 릿츠The Ritz>), 그리고 마지막으로 1977년 <더 머펫 쇼>의 게스트 출연으로 에미상을 수상했다.

유쾌하기 짝이 없는 토니상 수상 소감. 


2015년 케네디 센터 공로 훈장 수상

2015년에는 케네디 센터 공로 훈장Kennedy Center Honors을 수상하기도 했다. 
케네디 센터 공로 훈장 수여식 때에는 항상 수상자와 관련한 헌사를 바칠 유명인들이 무대에 오르는데, 
특히 이 때 배우 지나 로드리게즈Gina Rodriguez(<제인 더 버진> 등)가 리타 모레노에게 바친 헌사는 짧지만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 펑 

자막은 없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다.(발번역 주의) 
어린 시절의 자신은 리타 모레노를 동경하며 수없이 많은 부치지 못한 편지를 썼었다.
푸에르토리코 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지나 로드리게즈 자신이 티비, 영화를 보면서 배우를 꿈꾸던 어린 시절, 엄마에게 '엄마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티비에 언제 나와요?'라고 묻자 엄마가 자신에게 소개해준 것이 바로 리타 모레노다.
여배우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당당히 내놓는 푸에르토리코인 여성으로서 나의 롤 모델이 되어주어서 한없는 감사를 보내며 지금 이 자리에서 그때 보내지 못했던 편지를 부친다... 아이고 또 봐도 또 눈물나네 ㅠㅠ 

<원 데이 앳 어 타임> 안에서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를 아주 정면으로 다뤄진다.
페넬로페 세대, 알렉스 세대가 각각 부딪히는 문제의 결이 다르긴 하지만 결국 할머니 리디아가 쿠바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재 소속되어 있는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가족들이 버텨낼 힘을 얻는 것이 인상적이다. 
시트콤 내에서는 트럼프 이후 미국 사회에서 워낙 인종 문제가 첨예하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다뤄지고 있지만, 현 한국 사회의 중요 이슈와도 맞닿아 있어서 더욱더 그러하다. 


유색인종 여배우로서 겪었던 차별

리타 모레노는 1931년 푸에르토리코에서 농부인 아버지와 재봉사인 어머니 아래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0살도 채 되기 전인 1937년 배우로서의 꿈을 꾸며 어머니와 함께 뉴욕으로 이주했다. 
11세에 처음으로 미국 영화의 스페인어 더빙 목소리 연기를 맡으면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리타 모레노는 14세에는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했다. 

그러나 재능도 꿈도 많은 히스패닉계 여배우에게 주어진 기회는 언제나 인종차별의 장벽 아래에 제한적이었다.
백인 중심 사회인 헐리우드와 미국 연예계에서 유색인종은 항상 차별적으로 정형화된 모습으로 그려졌다. 
라틴 아메리카 혈통의 여성은 정열적이고 섹시하며 불처럼 타오르는 감정적인 성격의 인물이었고, 영화의 중심보다는 주변에 머무르는 감초 역할에 국한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서 '이국적'인 여성 캐릭터가 필요할 때는 해당 배우의 실제 출신 국가와 상관 없이 주먹구구식 캐스팅이 이뤄지기도 했다. 

리타 모레노는 자신이 겪었던 인종/성/나이 차별 이슈에 대해서 늘 적극적으로 발언해 온 배우인데, 젊은 시절 자신이 겪었던 차별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내 뿌리와 관계 없이 제작사가 원하는 모든 인종 타입의 배역을 연기해야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강한 이국적 억양을 사용할 것을 요청받았다. 하지만 인도 공주가 영어를 사용할 때 어떤 억양을 쓰는지 내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 모든 배역을 연기할 때면 그저 다 똑같은 억양을 사용했다. 어차피 그들은 '이국적'으로 들리는 억양을 원했을 뿐 그게 실제로 정확한 억양인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니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이전에 내가 맡은 모든 역할은 그들이 생각하는 정형화된 '라틴 여성'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주 치욕적이고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견뎌야만 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에게 들어오는 배역들은 거의 '라틴계 갱'과 관련된 것들뿐이었다.' 

<노란 토마호크the Yellow Tomahawk>(1954)에서 아메리칸 원주민 역


<왕과 나the Kina and I>(1956)에서 버마 출신 공주인 텁팀 역



파국으로 치달은 말론 브란도와의 연애 

리타 모레노는 유명한 헐리웃 스타 말론 브란도와 깊은 사랑을 나눈 사이였으며,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캔들을 낳은 사생활로도 유명한 말론 브란도와의 관계에 대해서 자신의 자서전 <리타 모레노>에서 상세하게 묘사했다. 

<데지레>(1954)에 함께 출연한 리타 모레노와 말론 브란도


이 둘은 1954년 영화 <데지레>에 함께 출연하며 만났다. 모레노는 말론 브란도를 처음 본 순간 '하늘을 날아오르는 로켓'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이 뜨겁게 불타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말론 브란도와 연인으로 지냈던 8년간 모레노는 브란도의 끝없는 여성 편력으로 지치는 동시에 점점 그에게 집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말론 브란도는 두 명의 다른 여성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도 했다고 하니.. 사실 리타 모레노는 말론 브란도에게 바람 상대였을 뿐이었나 보다.(리타님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떠나기는커녕, 말론 브란도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사람들과 데이트를 하기도 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엘비스 프레슬리였다고.
그렇지만 결국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완전히 빠져들 수 없었던 자신을 발견하고(엘비스 프레슬리가 바나나랑 땅콩버터 얹은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보며 자기보다 그 샌드위치를 더 좋아하는 남자같다고 생각했단다 ㅎㅎㅎㅎㅎ) 말론 브란도에게 돌아갔단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말론 브란도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말론 브란도는 차가운 태도로 지체없이 자신의 친구를 통해 낙태 수술을 예약했고(당시 미국에서 낙태는 금지되어 있었고, 비밀리에 이뤄지는만큼 의료 사고도 많았던 시대다.), 리타 모레노는 어디론가 실려가서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뒤 집에 돌아 왔을 때 하혈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낙태는 이뤄졌지만 아이가 여전히 뱃속에 있었던 것이다... 아 끔찍해 ㅠㅠ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말론 브란도의 태도다. 두번의 수술을 받고 온 리타 모레노에게, 자기가 이미 지불한 낙태 수술 비용을 달라고 했단다. 이런 상찌질이 진짜 답없는 인간 심한욕 심한욕!!!

리타 모레노는 절망과 좌절로 결국 약을 한움큼 삼키고 자살을 기도하기에 이르는데 다행히 말론 브란도의 스탭이 그녀를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가 위세척을 하면서 겨우 살아났다고 한다. 이 일을 겪으면서 말론 브란도와의 해악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행복한 결혼 생활의 추억 

말론 브란도와 관계를 청산하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오스카상을 받은 뒤, 리타 모레노는 친구의 소개로 유태계 의사인 레니 고든을 만난다. 


두 사람은 2010년 레니 고든이 사망할 때까지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마치 <원 데이 앳 어 타임>의 리디아처럼 훈훈한 스토리. 



<원 데이 앳 어 타임>에서 리타 모레노가 보이는 호연으로 에미상을 한 번 더 타야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꾸준히 나오나보다. 
배우로서 최고의 영광을 이미 누린 리타 모레노 개인에게 더 많은 상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노년의 여배우가 큰 상을 타면서 '나이 많은 여성'의 활동 영역을 더 넓힐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더 많은 스크린에서 다양한 역할로 마지막 날까지 꾸준히 활약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