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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백수/해외드라마

추천 : 퀴어 아이(넷플릭스), 1회 평균 10번의 폭소와 2번의 눈물

추천 : 퀴어 아이(넷플릭스), 1회 평균 10번의 폭소와 2번의 눈물


    

당근을 썰다가도 눈물 흘리게 만드는 변신 리얼리티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상황과 방법은 다양하고, 그때마다 선택하는 프로그램의 종류도 다르다. 나는 집안일 중 요리를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요리 시간에는 무조건 싱크대 위에 아이패드를 올려놓고 시청하며, 이때는 되도록이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한다. 눈이 딴 데 가 있는 바람에 칼질하다가 손 다친 적도 많지만 그래도 너무 무겁지 않은 프로그램을 하나 골라서 틀어놓고 보면서 요리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일을(내키면 설거지까지도!) 할 수 있어서 좋다. 

나 우는 거 아님. 너가 우는 거임. 이라고 써 있는 퀴어 아이 시즌 2 포스터ㅋㅋ


<퀴어 아이Queer Eye>는 대표적인 부엌용 프로그램이다. 재밌고 유쾌하고 감동적이며 무엇보다도 시청하고 나면 행복해진다.
얼마 전에 <퀴어 아이> 시즌 3가 올라왔길래 신나서 틀어놓고 보는 중인데, 혼자 요리 중에 자꾸 큭큭대다가 잠시 후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나를 보면서 다시 속으로 큭큭대고 악순환이다. 

한편으로는 크게 놀랐는데, 시즌 3가 시즌 1,2를 훌쩍 넘는 퀄리티로 나왔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인기와 재미를 이미 충분히 가진 티비 쇼가 시즌 3에서 더욱 크게 발전하나 신기했는데, 알고 보니 시즌 1,2는 시즌 1 공개 이전 한번에 찍었던 것들이라고 한다. 

아무튼 당근채를 썰다가도 감동의 눈물을 꺼이꺼이 흘리게 만드는 마성의 리얼리티쇼 <퀴어 아이>를 소개해보겠다. 

  

<퀴어 아이Queer Eye> 소개 

키워드 

#메이크오버 #리얼리티 #퀴어 #LGBT #치유 #공감 #변화 #라이프스타일 


소개 

<퀴어 아이>는 메이크오버를 주제로 하는 리얼리티쇼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은 일반인 출연자가 있고, 그 사람의 패션, 그루밍(헤어스타일, 피부 관리 등), 요리, 인테리어, 그리고 문화 분야를 각 분야의 전문가인 다섯 명의 게이 남성들이 변신시켜주는 것이 기본 포맷.  

이미 같은 컨셉의 2000년대 초반 오리지널 <퀴어 아이 포 더 스트레이트 가이Queer Eye for the Straight Guy>가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 소개하는 2018년부터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퀴어 아이>는 그 리메이크작이다. 


로튼토마토 91% / 2018년 에미상 최우수 포맷 리얼리티 프로그램 부문 수상(상 탄 게 기뻐서 한번 써 봤다..ㅋ) 


멋쟁이 5인방의 멋짐 

'멋쟁이 5인방Fab-5'이라는 이름의 번역은 너무나도 안 멋지지만, Fab-5들의 개인적 매력이 없었다면 <퀴어 아이>가 백날 좋은 얘기를 하고 있어도 끝까지 못 봤을 것이다.  


Fab-5는 그 이름처럼 Fabulous한 삶을 살고 있는 도시 남자들이다. 세련된 외형뿐 아니라 각자 자기 분야에서 젊은 나이에 뚜렷한 성공을 한 사람들이며, 대부분은 대도시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퀴어 아이> 시즌 1~3가 배경으로 하는 미 중서부의 보수적이고 작은 사회와는 거리가 먼 느낌이다.

이들은 각각 다른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성소수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삶에서 각자 자신만의 아픔과 분노를 경험해 본 사람들이다. 

'멋쟁이 5인방'이 출연자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며, 나도 당신과 같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당신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할 때마다 출연자는 물론 시청하는 나까지도 나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의 큰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변신 전을 부정하지 않는 메이크오버 쇼 

사실 개인적으로 어떤 종류든 메이크오버(make-over : 예능에서 주로 외모, 옷차림 등을 변신시킨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 리얼리티쇼를 즐기지는 않는 편이다. 

메이크오버 리얼리티의 큰 줄기는 항상 타인에 대한 빠르고 거친 평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삶을 사회적으로 고정된 잣대에 의해서 평가하는 일, 이 사람은 바뀌어야만 하고 방송국의 돈으로 빠른 시간 안에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시키겠다는 메시지 자체가 해악적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런 예능에서 다루는 '메이크오버'의 요소들은 주로 다이어트, 옷차림같은 외형적 요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편협하고 고정된 사회적 기준을 재생산한다. 


via GIPHY


<퀴어 아이>도 언뜻 보기에는 위에서 지적한 메이크오버의 큰 특징을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멋쟁이 5인방Fab(ulous) 5'이 담당하는 분야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이들의 메이크오버 역시 겉모습을 교정하는 데 집중하고 있긴 하다. 

그렇지만 이 방송은 출연자들의 삶을 최대한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변신 이전의 삶을 부정하거나 조롱하는 대신, 출연자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존중하고 칭찬하면서 출연자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Fab-5는 출연자에게 살을 빼라고 하지 않는다. 당신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은 흉측하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의 조언대로 하면 출연자의 삶이 좀 더 편안해지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될 수 있다는 메시지에 집중한다. 


via GIPHY


<퀴어 아이>의 Fab-5 중 가장 위트 넘치고 귀여운 캐릭터로 사랑받는 미용 분야 전문가 조너선 반 네스Jonathan Van Ness는 모든 출연자들과 1:1 상담의 시간을 가질 때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미용에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쓰는지를 묻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질문을 하는 이유에 대해, 출연자들의 기존 삶과 아주 동떨어지고 비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싶지는 않고 일상을 크게 변화하지 않고도 시도할 수 있는 작은 변화를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족이지만 조너선의 가장 유명한 대화 중 하나. 

via GIPHY


  

행동이 변화를 만든다 

살다 보면 누구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시기가 있거나 아픈 고민을 겪기 마련이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그 원인을 찾기 어려울 때, 또는 원인이 눈에 보여도 당장 그것을 해결할 힘이 없을 때에 화살은 나에게로 돌아간다. 타인을 지극히 위할 줄 아는 사람도 자신을 안팎으로 돌보는 일에는 무기력한 것을 종종 발견한다. 


퀴어아이 출연자들은 각자 다양한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혼자 이겨 내기 어려운 마음의 짐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퀴어 아이>의 '멋쟁이 5인방Fab-5'은 이들에게 '이제 새로운 집과 옷이 생겼으니 당신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새로운 집과 예쁜 옷을 주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조금 더 산뜻하고 예쁜 옷을 입으면 기분이 조금은 더 나아진다.
그건 새 옷과 그걸 사는 데에 들어간 돈이 가진 힘이라기보다는, 옷을 고르고 사는 시간과 노력만큼 나 자신을 돌보는 데에 마음을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꼭 옷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저렴하지만 예쁜 꽃 한 송이를 꽂아 놓는 일,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볍게 1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는 일,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단 10분이라도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하는 일 같은 것은 생각보다 아주 큰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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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아이>의 Fab-5가 출연자들에게 선사하는 경험도 그런 것들이다. 물론 짧은 며칠 동안 그들이 직접 출연자에게 선보이는 것은 멋지게 리모델링된 집이라든지 평소의 경제적 여유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옷 쇼핑같은 것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하는 모든 조언들은 이 '변신'이 끝나고 난 뒤에도 출연자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조금씩 적용할 수 있는 행동의 변화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마음의 병이 나아야만 다르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조금 다르게 살다보면 병이 낫기도 한다는 것. <퀴어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에 새기게 되는 교훈이다. 




블로그로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느끼는 건데, 내가 애착을 크게 느끼는 프로그램일수록 글쓰기가 참 어렵다. 

특히 <퀴어 아이>에 대한 추천글은 며칠간 쓰면서 지우고 쓰고를 반복할 정도로 말을 신중하게 고르게 되었다. 내가 쓰는 이 글이 뭔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질 거라 기대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소중하게 아끼고 싶은 마음이라 그런 것 같다. 

원래는 Fab-5 개인사 소개를 쓰려고 하다가 추천글도 하나 남기고 싶어서 시작한 글인데... 아무튼 <퀴어 아이> 10년은 흥했으면!